[반달레터]는 원래 책을 읽고 느꼈던 감상이나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내려간 [바다]와 책을 읽는 동안 작성했던 독서노트 기록 모음인 [육지]로 구성했지만, 3월 상현달 레터부터는 [바다]와 [육지]가 함께 교차되는 지점을 따라걷는 느낌으로 옮겨보았습니다. 4월 상현달 레터는 단편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속 「철길을 흐르는 강」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나의 독서 경험이 다른 경험과 연결되길 바라며 📬 |
|
|
12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검은 사슴』을 지나 어느새 세 번째 책이자 두 번째 단편소설집인 『내 여자의 열매』에 도착했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무래도 『채식주의자』의 씨앗으로 여겨지는 「내 여자의 열매」일 것이다. 사실 한강 작가의 책을 유명한 순서대로 접했기 때문에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를 가장 먼저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여자의 열매」도 읽었었다. 그때의 기억 떄문에 나도 모르게 이 소설집에 실려있는 작품들이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나보다. 그런데 웬걸. 첫 번째 순서로 실려있는 「내 여자의 열매」를 읽고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예상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응? 하고 놀라거나 의외의 전개에 어리둥절한 순간들이 많았다. 질문들이 쌓여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여운이 길게 남았던 작품은 마지막에 실려있는 「철길을 흐르는 강」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정독하고 동시에 메모하며 두 번 읽었다. 두 번. 독서노트에 메모하면서 읽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 보통은 한 번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독서노트에 메모하면서 읽을 때는 주로 인물 중심으로 메모하면서 읽는다.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에 인물이 등장할 때가 많아서 인물의 이름이나 인칭대명사(나, 너, 우리, 그, 그녀...)가 나올 때마다 확인한다. 그런데 「철길을 흐르는 강」은 독서노트에 메모하면서 읽었는데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남았다. |
|
|
"당신은 어린 시절을 줄곧 고향의 강가에서 지냈으니, 철든 뒤 서울에서 그것을 보았다 해도 애써 눈여겨보지 않았을지 모르겠군. 언젠가, 당신이 아니더라도, 달그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그렇게 막막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
무수한 불빛을 받아 여러 겹으로 교차된 사물들의 그림자를 보면서 그 사람*도 나처럼 서 있었겠지. 달이 드리우는 아련하고 따뜻한 그늘을 그 사이에서 문득 발견해낼 때까지, 그 사람은 그 길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웃고 있었을까. 울음을 참는 일을 방금 체념한 찰나였을까. 그 밤에 그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 몇 번째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있었을까.
나는 열세 살이었어. 죽은 어머니의 장롱 서랍을 정리하던 그해 이른 봄날 내 예닐곱 살 적 색바랜 내의를 발견하고는 새끼 뱀의 허물을 밟은 것처럼 진저리 쳤던 떄가 처음이었으며, 그 겨울 초입의 밤에 두번째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 - p.342 |
|
|
「철길을 흐르는 강」은 1인칭 화자 '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청자인 '당신'은 나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떠나버린 '그'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342페이지의 독백에는 화자와 청자, 그리고 (죽은) 어머니 외에 '그 사람'이 언급된다. 그 사람은 누굴까? '나'처럼 철길에 서서 달그늘 보기를 좋아하던 사람은? 웃거나 우는 채로 철길을 거닐던 그 사람은? 이 질문은 함께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단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대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는 아쉬워서 다음날 「철길을 흐르는 강」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
|
|
「철길을 흐르는 강」은 『내 여자의 열매』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341페이지부터 3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점에서 '나'를 중심으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읽다 보면 1인칭 화자는 사라지고 '그녀', '그'처럼 3인칭 대명사를 바탕으로 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바뀐다. 소설은 숫자 1부터 12로 파트가 나뉘어져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홀수 파트(1, 3, 5, 7, 9, 11)와 짝수 파트(2, 4, 6, 8, 10, 12)로 묶을 수 있다. |
|
|
홀수 파트에서는 1인칭 화자 '나'의 어릴 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담장 안쪽에 연립주택이 있고, 너머로 철길이 나있는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어머니가 맞는 걸 보기 힘들거나 주먹이 날아오는 걸 피하기 위해서 '나'는 자주 책을 챙겨 집을 나온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담장 아래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어머니가 하얀 새 구두를 신고 나가 철길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죽음을 선택한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의 날들을 견디던 '나'는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눈을 아프기 시작했다. 시력을 잃지 않으려면 일을 쉬라는 처방을 듣고 책 읽기를 그만 둔다.
짝수 파트는 그녀와 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외곽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녀가 항구 도시 주택가로 퇴근하기까지 2시간 이상 걸린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살았지만 어느날부터 그는 떠나버렸고, 혼자 남은 집에서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살아간다. 짝수 파트와 홀수 파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질 때쯤 그녀는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방문한다. 예전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고,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통해 짝수 파트의 '그녀'와 홀수 파트의 '나'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철길 위에 앉아 넘실거리는 강줄기를 바라본다. 아니, 그녀의 눈에 철길이 강줄기이다. 곧 그녀가 있는 곧까지 강이 범람해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 물살이 그녀를 덮친다. |
|
|
「철길을 흐르는 강」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던 이유는 하나의 장면 때문이다. 어머니가 죽기 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방문한다. 어머니가 미사에 참여하는 사이 '나'는 성당 밖을 돌아다니다가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떨어져 죽어가는 박새를 목격한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성당 사무실에 들어가 어른에게 박새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는데 어른은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가만 놔두는 수밖에 없어. 늘 그렇게 부딪히곤 하는걸. 그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조치를 취할 수 있겠니?"(p.352)
어느 날부터 새가 등장하는 장면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아마도 탐조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도 버지니아 울프가 새와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죽은 새를 위한 작은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
|
|
「철길을 흐르는 강」에서 창문에 부딪혀 새가 죽는 일은 사무국의 여자에게는 매번 반복되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죽어가는 박새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명목 아래 죽어가는 인물들을 떠올린다. 그중에는 자신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가정 폭력으로 몸과 정신이 무너져가지만 그런 일은 늘 일어난다고,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겠냐고 쉬쉬하고 넘어가는 순간들. 느리게 들썩이는 가슴살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죽은 박새를 외투 주머니에 넣는다.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부패할 때까지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다니다 철길 둔덕에 묻어주기. 이것이 '나'가 작은 박새를 위해 치르는 작은 장례식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는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초기작을 읽으면서 그가 계속해서 작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낀다. 『검은 사슴』에서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광산 사고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몇 번이고 반복하며 천천히 이야기하는 반면, 기차 탈선 사고와 같은 국가적 재난은 에필로그에 짧게 서술한다. 그러니까 투명한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떨어져 서서히 죽어가는 박새를,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폭력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어머니를, 여러 가지 이유로 앓고 쓰러지고 사라지는 여성을 그릴 때, 그것은 죽은 박새를 주머니에 고이 넣어다니는 것과 같이 작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치르는 작은 장례식일까? |
|
|
* 342페이지에 나오는 '그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이 질문은 여전히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i) 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철길을 거닐었을 어머니라고 가정할 경우, 바로 다음 문단에서 같은 대상을 동일한 대명사로 받지 않고 '죽은 어머니'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ii) 그 사람이 '나' 자신이지만 '나'와 분리해서 타자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짝수 파트에서 이미 '나'를 '그녀'라고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가정은 아닌 것 같지만 작품 전체에서 이 페이지에서만 '그 사람'이라는 표현하고 있어서 확신하기 어렵다. iii) 그 사람은 어머니도, '나'도 아닌 비슷한 상황에 있는 또 다른 여성이라고 가정할 경우, 이야기가 확장되는 효과는 있지만 역시 확신하기는 힘들다. |
|
|
『내 여자의 열매』 혹은
「철길을 흐르는 강」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작품을 읽고 인상 깊었던 점,
의문이 남았던 점이 있다면
답장으로 남겨주세요 :)
↘답장을 남길 분들은 아래 버튼을 클릭↙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