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레터]는 원래 책을 읽고 느꼈던 감상이나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내려간 [바다]와 책을 읽는 동안 작성했던 독서노트 기록 모음인 [육지]로 구성했지만, 3월 상현달 레터부터는 『검은 사슴』을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바다]와 [육지]가 함께 교차되는 지점을 따라걷는 느낌으로 옮겨보았습니다. 3월 하현달 레터는 『검은 사슴』의 <연 지는 골짜기> 이후부터 후반부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나의 독서 경험이 다른 경험과 연결되길 바라며 📬 |
|
|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 p.431
“나의 내면은 끊임없는 배반과 이기심으로
서서히 분열되고 있었다.”
- p.432 |
|
|
<연 지는 골짜기>에서 인영은 산 속 외딴 집에 명윤과 함께 고립된다. 자신을 두고 왔던 길로 돌아가라는 명윤의 말을 듣고도 명윤을 혼자 남겨두지 않기로 한다. 그곳에서 인영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언니를 잃고, 살아남은 자로서 어머니와 인영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살아남은 자로서 인영은 본능적으로 죽은 언니를 닮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마음을 닫은 채로 ‘외로움이 내 집이고 옷이고 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의선을 만나고, 인영은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연다. 자신의 공간 안에 의선을 들이고 나서 인영이 마냥 태연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의선을 있는 그대로 모두 품어주고 싶었다가도 다른 날에는 의선이 눈 앞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모난 마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도 돌아서서 바로 후회하고, 작은 일에도 잊고 있던 상처를 다시 헤집는 듯 불안해지는 모습은 진짜였다. |
|
|
“나 역시 명윤처럼, 어머니처럼, 의선처럼,
아니, 의선과 함께
그 무덤 같은 방에 나란히 누워,
짐승 우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치곤 했던 걸까.”
- p.441 |
|
|
누군가에게 하나 남은 튜브를 건네지 않겠다고, 절대로 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인영은 의선을 품었던 것처럼,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명윤을 혼자 두지 못하고 함께 남는다. 이 과정에서 마음 속으로 선을 그어왔던 존재들 - 명윤, 어머니, 의선과 자신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명윤, 어머니, 의선은 모두 소중한 존재를 잃고 살아남은 자였고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인영은 자신이 그들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모두 닮아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
|
|
“그녀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남들처럼 공책에 쓰는 일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말들을 머릿속에 굴려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긴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더딘 속도로 문장 하나하나를 불려
그날 치의 일기를 완전히 암기하는 작업이
그녀의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 p.494 |
|
|
<약초꽃 피는 때>에 이르러서 의선은 드디어 목소리를 찾는다.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에 기대어 있기는 하지만 의선이 중심 인물이 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일들을 풀어낸다. 그중에서도 의선이 일기를 쓰는 과정을 묘사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의선은 일기를 머릿속에 쓴다. 기록되지 않은 존재인 의선이 기록되지 않는 일기를 쓴다. 존재와 기록이 그렇게 닮았다. 의선이 머릿속으로 일기는 쓰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자신의 하루를 담을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을 떠올리고, 오랫동안 그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고쳐나간다. 문장 하나하나를 더디게 '불린다'는 표현 때문인지 문장을 짓는 과정이 밥을 짓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쌀을 불려 밥을 짓듯이 하루동안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을 불려서 간결한 문장 안에 담는 일. 의선이 일기를 쓰는 과정은 한 편의 시를 짓는 일과도 닮았다. |
|
|
“내 인생은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어요.
(...)
그녀는 그 문장들을 모두 지운 뒤 다시 허공에 썼다.
나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살을 만지고 싶어요.
누구라도 좋아요. 사람의 살을 만지고 싶어요.”
- p.502 |
|
|
의선이 일기를 쓰는 방식, 그러니까 하나의 문장을 떠올린 다음 그 문장을 지우고 다른 문장을 떠올렸다가 다시 또 문장을 조금씩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어쩌면 『검은 사슴』이라는 작품 자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방식에 관한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쓰기 위해서, 의선의 방식으로 쓰기 위해서, 이야기는 여러 번 반복된다. 여러 번 반복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
|
|
『검은 사슴』 안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다르게 서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의선의 횡단보도 질주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각각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다른 버전으로 세 번 서술된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41페이지에서, 명윤은 인영에게 ‘그런 여자가 있었다더라’는 식으로 전해들은 이야기를 회상한다. 여기서 의선은 ‘한 미친 젊은 여자’로, 이 이야기는 ‘음담’으로 그려진다. |
|
|
‘그 여자는 회사 앞의 팔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하나씩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구두 두 짝을 벗어던진 뒤
맨발로 차도와 인도를 뛰어다녔다고 했다.
명윤은 한 미친 젊은 여자에 관한 음담쯤으로
그 사건을 받아들였다.
화제가 궁해진 술좌석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잘 아는 선배가 직접 창밖으로 보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좌중을 즐겁게 하기까지 했다.’
- p.41
|
|
|
그로부터 280페이지쯤 지나, 이야기 속으로 깊숙히 들어간 뒤에야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던 인영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서술된다. 인영의 목격담에서도 의선은 이름이 없다. 그저 ‘여자’라고만 불린다. 322페이지부터 326페이지까지, 다섯 페이지에 걸쳐서 자세히 묘사된 인영의 서술에서 여자는 무언가에 쫓기는 초식동물이다. 경찰들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맹렬하게 몸부림치고, 춤추듯이 내달리는 모습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으로 보인다.
의선이 옷을 벗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던 사건은 503페이지에 이르러서야 의선의 목소리로 다시 그려진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500페이지를 읽어야 한다) <약초꽃 피는 때>에서 의선은 드디어 목소리를 얻었고,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모두 서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며 옷을 벗었던 일도 맥락을 얻는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의선이 점진적으로 어떤 고통들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고 나면 횡단보도 위에서 쫓기듯이 도망치고 몸부림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검은 사슴』은 다시쓰기에 관한 글이 아닐까. 남아있는 기록과 누락된 이야기를 대조하면서 ‘무엇을 쓸 것인가’를, 인물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 서술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는 글. |
|
|
글쓰기는 쓰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까. 혹은 불행하게 만들까. 가끔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미 망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이게 다 뭐라구, 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그래서 마지막 즈음 등장하는 미희의 나레이션이 좋았다. |
|
|
“나는 이대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구.
당신처럼 뭘 찍어야만 사는 게 아니라 말이야......
당신은 그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고, 강하고,
그래, 처절하기도 하니까,
그런 걸 찍는 것으로 해서 당신까지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거지.
(중략)
하지만 나는 달라.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사는 게 좋아.
살아 있는 게 좋다구.
되도록 오래 살고 싶어.
많이 웃고,
맛있는 것을 먹고,
편안한 잠을 자고,
좋은 것들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 p.526 |
|
|
『검은 사슴』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검은 사슴』을 읽고 인상 깊었던 점,
의문이 남았던 점이 있다면
답장으로 남겨주세요 :)
↘답장을 남길 분들은 아래 버튼을 클릭↙ |
|
|
|